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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년간의 재판 끝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1심 무죄를 선고받았어요. 이 합병은 제일모직이라는 삼성 계열 패션기업에 지분을 갖고 있던 이재용 당시 부회장이 어떻게 삼성 전체를 장악하고 회장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는 사안이었죠.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합니다. 이 합병이 관심을 가진 이유는 제일모직에 23.2%의 지분을 갖고 있는 이재용 당시 부회장이 이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에 주요 주주가 됐기 때문이에요. 설명이 부족하다구요? 삼성 계열사 중 핵심은 누가 뭐래도 삼성전자죠?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의 주요 주주였습니다. (이런 계열사 간 순환출자가 한국형 재벌의 폐해 중 하나지만 오늘은 그 얘기를 하는 날이 아니니 접어두겠어요..) 즉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해 합병 후 삼성물산의 주요 주주가 된 이재용이 삼성전자의 주요 주주가 되는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거죠.

그러나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우선 삼성물산은 매우 큰 기업입니다. 제일모직 대비 매출은 5배, 자산 총계도 3배 더 많죠.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발생하고 이 부분이 이번 재판에 핵심 사안입니다.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0.35 대 제일모직 1. 그러니까 대략 1:3의 비율로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이 이뤄진 겁니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3:1의 비율로 물산에 유리한 합병이 되어야 할 텐데 정반대의 결과가 이뤄진 겁니다. 이에따라 삼성물산에 투자한 주주들은 손해를, 제일모직의 주식을 많이 보유한 이재용은 큰 이익을 얻게 됩니다. 여기서 더 문제는, 우리의 노후 소득을 보장해 주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에 주요 주주라는 겁니다. 손실액만 최대 6750억 원. 이런 어처구니없는 합병을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왜 찬성해 줬을까요? 바로 이재용 당시 부회장이 박근혜에게 준 뇌물이 작용하게 됩니다. 삼성물산의 주요 해외 주주였던 엘리엇은 이 결정에 중대한 손실을 보았다며 국가 투자자 분쟁 기구(ISDS)에 이를 제소, 승소해 한국 정부가 1300억 원을 배상해 줘야 하는 판입니다. 

한 걸음 더! 이 불리한 합병이 가능했던 이유는 삼성물산 가치는 낮추고 제일모직 가치는 높이는 회계 조작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혹시 삼성바이오로직스라는 회사 들어보셨나요? 당시 언론에서 '삼바'라고 불렀던 이 기업은 제일모직의 자회사(아들 회사, 제일 모직이 주요 주주)입니다. 2011년 신설된 의약 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연이어 적자를 면치 못합니다. 그러다 2015년 1조 단위의 이익을 달성하게 됩니다. 이유는 박근혜 정권의 바이오산업 성장 정책과 함께 분식회계(회계가치 뻥튀기)가 그것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종속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회계 장부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분식회계를 한 거죠.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간단히만 말씀드리면, 회사 간 관계를 조정하게 되면 가치를 다시 책정해서 회계장부에 작성하게 되어있습니다. 이때 보통(?) 가치는 높게 책정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높게 책정된 에피스의 가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장부에 기록되어 4조 5천억 원의 이익으로 기록됩니다. 기존에 3천억에 비하면 15배 자산 뻥튀기를 한 셈이죠. 이렇게 높아진 '삼바'의 가치가 제일모직에 영향을 주어 저런 어이없는 합병이 가능하게 된 겁니다. 삼바의 분식회계는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인정된 바 있어요.

그러나 재판부는 "합병 목적이 승계'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이재용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납득하기 참 어려운 판단이면, 과거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재판 당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재용 회장의 승계와 관련 있다고 판결한 대법원 판단과도 배치가 됩니다. 재벌 세습을 위해 분식회계 부당한 합병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국민연금 손해가 막심했으나 아무도 죄를 지은 사람이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2024년 판 유전 무죄일까요.